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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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PSNet Special Report

Recommended Citation

Lee Chun-keun,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능력", NAPSNet Special Reports, May 11, 2015, https://nautilus.org/napsnet/napsnet-special-reports/%eb%b6%81%ed%95%9c%ec%9d%98-%ed%95%b5%eb%ac%b4%ea%b8%b0-%ea%b0%9c%eb%b0%9c%ea%b3%bc-%eb%8a%a5%eb%a0%a5/

이 춘 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11 May 2015

English version (영어 버전) here

http://www.kdjlibrary.org/


요약

이춘근 한국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글에서 ‘북한은 수십 년의 노력을 거쳐 국내산 원료를 사용하는 원자력 주기를 완성하였다’고 하고 ‘북한의 핵무기는 … 각종 부품과 재료, 기술이 부족하’지만 ‘자력갱생으로 이러한 난관들을 상당히 극복했’다고 분석한다. 이 연구위원은 ‘북한의 핵 관련기술 개발과 수준에 대한 보다 싶은 연구와 대책을 마련팔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고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능력

북한이 3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하면서 그 위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하였고, 2013년의 제3차 핵실험에서는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실험했다고 발표하였다. 미사일에 탑재할 만큼 소형화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2010년에는 대규모 우라늄 농축공장을 공개하면서 핵무기 보유량을 대폭 증가할 수 있음을 보였고, 최근에는 “새로운 유형의 핵실험”을 언급하면서 보다 진보된 핵무기 개발을 천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변 당사국들을 보면, 이 국가들의 주요 관심도와 북한에 대한 이해 정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해석들이 나오는 것 같다. 미국은 국제안보와 비확산에 관심이 많고 한국은 한반도비핵화와 남북협력, 통일문제를 모두 중요하게 고려한다. 중국은 국경의 안정과 지역 내 영향력 확대를 중요시하고, 북한은 체제유지와 경제 회복, 에너지 문제 해결을 핵심으로 본다. 따라서 참가국 사이에서 북한의 의도를 오해하거나 해결방안 도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의 실정과 능력을 좀 더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본문에서는 북한의 과학기술사와 교육사, 국가연구개발계획, 대외과학기술협력사 같은 원전자료들을 분석해 북한 핵 개발의 역사와 능력을 재평가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논쟁을 줄이고 향후 전개 방향들도 좀 더 세밀히 예측할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논의들과 크게 다른 결론들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실제 상황들을 귀납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에서 좀 더 객관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의 핵개발 역사와 핵연료주기 완성

1) 일제와 소련의 영향

북한의 핵개발 역사는 일제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이화학연구소(Institute of Natural Science and Chemistry, Riken)는 2차대전 시기에 원자력에 대한 기초연구를 수행하면서 북한의 희토류 광물을 찾아냈다. 분석 결과, 이 광물 안에 4-5% 정도의 산화우라늄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단, 이들이 북한에서 몇 톤의 광물을 생산한 후 인천항으로 반출을 시도하던 중에 2차대전이 종료되었다. 미 군정 당국이 이 광물을 압수해 관련자들을 심문하고, 일본의 원자력 관련 연구 동향에 대한 극비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몇 년 전에 이 보고서가 비밀에서 해제되어 일반에 공개된 바 있다.

식민지 시절에 일본 기업이 함경도 지역에 진출해 건설한 흑연 전극 공장도 북한의 핵개발에 영향을 미쳤다. 노구치 재벌이 북한에서 품질이 우수한 흑연 광산을 탐사, 개발하고, 당시로서는 첨단 시설을 갖춘 공장을 건설해 이를 제품화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북한산 천연우라늄과 흑연을 이용하는 흑연감속로 개발 토대가 이 시기부터 형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냉전 시기에 미국과 경쟁하면서 원자폭탄 개발에 매진하던 소련도 북한의 우라늄 자원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에 따라 북한-소련의 과학기술협력에 항공기 등을 이용한 우라늄 자원 탐사와 개발 및 수출이 중요 항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김일성도 관련 자원의 개발과 소련으로의 수출을 통한 외화 획득을 수차례에 걸쳐 강조한 바 있다. 이것이 북한이 일찍부터 소련이 주도하는 “연합핵연구소(드부나연구소, UINR)”에 인력을 파견하고, 원자력 관련 연구와 설비 구축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2) 1950-1960년대 : 토대 형성

북한의 핵개발 토대는 195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전쟁 중인 1952년에 과학원을 설립한 김일성은 3년에 걸친 전후 복구가 마무리된 1950년대 중반에 원자력에 대한 기초연구와 인력양성을 시작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1955년에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에 핵물리강좌가 개설되었고, 이듬해에는 과학원 수학물리연구소에 핵물리실험실이 설치되었다. 소련과 동구권에 관련 인력을 대대적으로 유학 보낸 것도 이 때쯤이었다.

국가과학기술계획에도 원자력이 중요 과제로 포함되기 시작하였다. 원자력이 국방수요와 에너지 문제 해결 모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57년부터 시작된 북한 최초의 국가과학기술계획인 “과학발전 10년계획”에도 우라늄을 포함한 전국적인 지하자원 조사가 포함되게 되었다. 1960년대에 소련과의 협력이 위축되면서 동 10년계획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지만, 북한의 자체 인력으로 추진하는 전국 규모의 자원조사는 계획대로 추진되어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북한 최초의 원자로가 건설된 것도 이 때였다. 소련과의 원자력 협력을 통해 영변 지역에 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IRT-2000 원자로를 건설하여 1965년 경부터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로서 북한 지역에 원자력에 대한 연구와 인력 양성, 응용개발 등이 균형 있게 발전하게 되었다. 1960년대 한반도 안보환경이 악화되자 국방과학연구원(제2자연과학원)을 설립해 본격적인 고성능 무기 개발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3) 1970년대 : 자주적인 핵연료주기 형성기

1970년대에 세계적인 석유 위기가 닥쳤다. 일찍부터 석유 대신 국내자원이 풍부한 석탄 위주의 원료, 에너지정책을 추진했던 북한은, 석유위기로 국내산 원료 우선정책의 타당성과 실효성이 확증되었다고 보고 이를 더욱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김일성은 국내산 원료를 이용한 에너지 공급과 공업원료 수급정책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게 된다. 원자력 분야에서도 북한에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우라늄과 흑연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흑연감속로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1970년대 초반은 그 수년전에 시작된 “김일성 유일사상체제” 수립과 판문점에서 벌어진 “8.18 도끼만행 사건” 등으로 북한 과학기술계에도 대대적인 사상검열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북한 과학기술 연구의 중추인 과학원과 대학에서도 상당히 많은 학자, 교수들이 지방의 노동현장으로 좌천되었다. 따라서 당시 최고 지도자의 지시는 과학기술계에서도 재론의 여지없이 그대로 실천해야 할 지상의 과제가 되었다. “주체의 과학기술혁명 이론”이 정비되어, 국가 중점 연구과제에서도 기초연구보다는 국내 생산현장의 수요가 더 크게 반영되었다.

분격적인 원자력 개발에 대응하여 대대적인 고급 전문인력 양성을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1973년 초에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에 핵물리학과가, 화학부에 방사화학과가 개설되었고, 김책공업종합대학에는 핵재료학과, 핵전자공학과, 원자로학과, 물리공학과 응용수학과의 5개 학과를 가진 핵물리공학부가 출범하였다. 이로써 원자력을 전공한 대학 졸업생들이 급증하였다.

김일성종합대학 출판사를 중심으로 수십권의 핵 관련 교과서들을 편찬한 것도 이 때였다. 주로 외국 문헌의 번역과 정리에 치중한 것이지만, 국내 실정에 맞는 교과서와 참고서를 대량으로 확보하여 인력 양성과 수준 제고를 시도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1974년에는 IAEA에 가입해 체계적인 산업 육성과 자료 수집에 들어갔다.

4) 1980년대 초, 중반 : 연구에서 생산으로

1980년대가 되자 에너지 부족으로 국가경제가 마비되고,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도 크게 벌어지게 되었다. 이어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거나 대대적인 개혁개방에 들어가면서 김일성은 체제유지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원자력을 이용한 전력 생산을 넘어서 핵무기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도 이 때부터라고 보인다. 1981년에 개최된 전국과학자대회에서 국내산 자원을 이용한 원자력발전을 강조하였고, 관련 연구와 인력양성도 크게 강화하였다.

이 시기의 커다란 특징은 기초분야와 응용분야를 분리하고, 응용분야는 대대적으로 영변으로 이전시킨 것이다. 따라서 원래부터 기초학문에 치중하던 김일성종합대학은 이전의 두 학과를 통합해 원자력학부를 만드는데 그쳤으나, 응용분야를 같이 하던 김책공업대학은 크게 개편되었다. 원래 5개학과에서 핵재료학과와 핵물리공정학과의 엘리트 코스를 남겨놓고 응용수학과와 물리공학과를 기초학부로 이전시킨 후에, 핵전자공학과와 응응분야를 모두 영변에 설립된 물리대학으로 이전한 것이다. 해외유학도 크게 확장하였다.

원자력 연구분야도 기초와 응용을 분리하면서 영변지역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과학원과 이과대학에서 기초연구를 하고, 응용분야는 영변 지역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특징적인 것은 이 시기에 추진된 1차, 2차 과학기술발전3개년계획(1988-1993)에 레이저와 화학교환법을 이용한 우라늄 농축과 고속증식로 개발,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폐기물 처리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북한에서 국가연구개발계획은 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계획들이 실행에 옮겨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레이저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은 평양 북쪽의 과학기술단지인 평성에 있는, 과학원 산하의 이과대학에서 연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학에는 1980년대에 중국과학원과 북한과학원의 협력을 통해, 중국과학원 산하 중국과학기술대학에서 지원한 레이저 기기가 설치되어 있다. 단, 기술적, 설비적 문제로 아직 이를 이용한 대량생산은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1980년대 후반부터는 국가연구개발계획에서 원자력에 대한 연구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후에 설명하는 것과 같이, 1980년대 후반에 영변지역이 군수공업부에 소속되면서 관련 연구가 모두 무기화 우선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핵무기 연구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관련 연구 모두를 비밀로 분류한 것이다.

5) 1980년대 중, 후반 : 에너지에서 무기로

국가적인 노력을 거쳐 1983년에 영변지역에서 농축의 전단계인 육불화우라늄(UF6) 생산공정이 개발되었고, 1986년에는 핵물질 생산의 주역인 5MWe 원자로가 가동을 시작했으며, 1989년에는 재처리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이 부분가동에 들어가게 되었다.

영변지역에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원자로가 건설되면서 본격적인 핵무기 생산이 시작되었다. 먼저 추진한 것은 지도기관을 정비한 것이었다. 원래 1960년대에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고 후에 이를 원자력위원회로 개편했는데, 1986년에 이를 원자력공업부로 확대하여 실제적인 산업 행정부서가 되었다. 이듬해인 1987년에는 영변지역이 무기 개발과 생산을 주관하는 노동당 군수공업부 산하로 이관되었다. 1994년에 원자력공업부가 원자력총국이 되었으나, 군수공업부의 통제를 받는 것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기관도 크게 확대하였다. 영변지역 기술자들의 재교육과 자녀교육을 위해 1980년에 설립된 물리학원을 확장하여 1980년대 말에 물리대학이 설립되었고, 대학원 과정을 개편하여 박사과정까지 개설하였다. 단, 물리대학이 군 소속이므로 상세한 내용은 비밀이고, 타 지역 학생들은 이 대학의 존재도 모르고 진학도 할 수 없다고 한다.

물리대학은 핵재료, 핵전자, 원자로의 3개 학부에 10개의 학과 또는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이 중 3개는 수재들이 진학하는 엘리트 코스이고, 원자로공학과는 3.5년제 전문대학 학과이다. 나머지는 반년간의 군사훈련을 포함해 4.5년의 학습을 한다. 모든 학생들이 영변지역의 생산과 연구기반을 활용해 실무교육을 받고, 마지막 학기는 거의 대부분을 현장실습으로 진행한다.

플루토늄 생산과 함께 무기화 연구도 영변과 주변 몇 곳에서 진행되었다. 한국 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1983년부터 70여회의 고폭실험이 실시되었고, 1993-1998년에는 기폭장치 완제품 실험이 수행되었다. 결국 2006년 10월 9일에 만탑산 지역에서 최초의 핵폭발 시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의 핵실험은 세계 최초로 사전에 일시와 위력을 공지하고 실험한 것이다. 중국의 학자들은 이를 실험 성공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하였다.

6) 불능화와 중단

이를 토대로 2007년 2.13합의에 의한 불능화 작업을 다시 살펴볼 수 있다. 관련국들은 플루토늄 생산 중단을 가장 우선시하고,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이에 관련되는 연료가공, 원자로, 재처리설비 불능화를 관철시켰다. 여기에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과 시리아 등으로의 확산 금지가 추가되었다.

플루토늄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안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이고, 일정기간동안 순조롭게 추진되어 왔다고 생각된다. 불능화 다음 단계로는 Pu 재고와 사용후 핵연료 반출, 기존 핵무기와 핵무기 실험장 폐기, 우라늄 광석 채광과 정련, 변환 설비, IRT-2000 원자로, 우라늄 농축 설비, 거대한 연구소와 설비, 인력 등에 대한 추가 조치가 논의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좋은 출발이었지만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이 곧 입증되었다. 2013년 4월에 북한이 불능화 중단을 선언한 후 6개월만에 5MWe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이다. 비록 설비가 노화되어 저출력으로 가동하고 자주 가동을 중단하지만, 이를 통해 추가적인 무기급 Pu를 생산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최근에는 방사화학실험실의 재가동 징후가 포착되었는데, 이는 원자로에서 생산된 Pu의 추가 재처리가 시작될 것임을 시사한다.

7) 우라늄 농축

2009년 4월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시사하는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발표하고, 동년 6월에 이를 공식화하면서 북한 핵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였다. 2002년 켈리 특사의 북한 방문 시부터 거론되던 우라늄 농축 문제가 핵심 이슈로 부상한 것이다.

북한 문헌에서는 우라늄 농축이 1980년대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88년부터 추진된 제1차, 제2차 과학기술발전3개년계획(1988~1990, 1991~1993년)에 자주적인 핵연료주기 완성을 핵심 분야로 포함시키고, 레이저에 의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페기물 처리 등의 핵심 기술들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주의 북한의 국가과학기술계획은 법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과제를 맡은 기관과 과학기술자들은 무조건 이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국방 분야의 과학기술계획에는 이를 응용한 핵무기 개발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의 대외과학기술협력사에서도 사례를 찾을 수 있다. 1990년대에 중국과학원과 북한과학원 기계공학연구소 사이에 생물학용 초고속 원심분리기 개발에 관한 공동연구가 있었다. 기계공학연구소는 북한 최고의 연구소이지만 재료를 국내에서 조달하지 못해 중국에서 샘플을 지원해야만 했다. 이것도 실험 중에 폭발해서, 공동연구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파키스탄에서는 P1 원심분리기 20여개와 P2 설계도를 주고 공장 견학을 시켰다고 한다. 고강도 알미늄 150t 을 수입하기도 했는데 이는 2,600개의 원심분리기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그러나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이 고강도 알루미늄이 P-2 원심분리기 케이스용이고, 로터에 들어가는 마레이징강(maraging steel)은 북한이 생산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이로 볼 때, 북한이 원심분리기 개발 과정에서 상당한 난관을 극복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북한은 2010년 11월에 영변을 방문한 해커 박사에게 2000개의 원심분리기를 갖춘 대규모 우라늄 농축 공장을 보여 주었다.

북한의 핵 능력

1) 자주적인 핵연료주기 완성

이러한 노력을 통해 형성한 북한의 핵무기 개발 능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북한산 원료를 가지고 자체로 순환하는 핵연료주기를 완성하였다. 원광으로 2천만 톤이 넘는 우라늄 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평산에 있는 정련시설을 이용하여 연 290만 톤 정도의 옐로우 케익(yellow cake, U3O8)을 생산할 수 있다.

옐로우 케익은 영변의 핵연료생산공장으로 옮겨져 금속 우라늄으로 변환된다. 이후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서 마그녹스(Magnox) 피복관 속에 넣어 원자로 핵 연료봉으로 사용한다. 영변의 핵연료생산공장은 연간 100톤의 우라늄 핵연료봉을 생산할 수 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5MWe 원자로 2회분에 해당한다.

원자로는 영변지역에 2기가 가동 중이다. 별도로 건설되던 50MWe와 200MWe 원자로는 1994년 제네바합의로 중단되었고 현재 복구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1965년에 가동을 시작한 IRT-2000 원자로는 구 소련에서 제공한 것으로 초기 출력이 2MWt였으나 북한이 이를 8MWt로 확장하였다. 동위원소 생산과 연구용으로 활용하며 소량의 고농축 우라늄을 원료로 사용한다.

무기급 Pu 생산의 핵심인 5MWe 흑연감속로는 1986년에 완공되어 1994년 4월까지 가동하다가 국제사회의 제재로 중단과 재가동을 반복하였다. 불능화 조치로 2007년에 가동을 중지하고 냉각탑을 폭파했으나, 북한이 2013년부터 낮은 출력으로 다시 가동하고 있다. 핵연료봉 8,000개를 장전하고 1년 정도를 가동하면 무기급 Pu 6~7kg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핵무기 1개 분량에 근접한다. 그동안 생산한 Pu 총량은 최대 44~50kg 정도라고 한다. 이는 핵무기 6~10개 분량에 해당한다.

사용후 핵연료는 방사화학실험실로 알려진 공장에서 재처리해 핵무기용 Pu를 추출한다. 이 공장의 재처리 능력은 5MWe 원자로 1회분을 약 100일 정도에 재처리할 정도로 알려졌다. 건설 도중에 중단된 2번째 공정이 완료되면 재처리 능력이 2배로 증가하게 된다. 이 공장 안에는 핵무기용 피트 제조를 위한 금속 Pu 생산설비가 있다.

2) 새로운 원자로 건설

지금까지 건설, 운영했던 흑연감속로와 다르게, 새롭게 건설 중인 경수로도 있다. 북한은 2010년 11월에 방북한 해커박사에게 우라늄 농축 시설과 함께 경수로도 공개하였다. 북한은 이 원자로를 자체적인 우라늄 농축설비 보유의 근거로 내세우기도 한다.

북한은 이 경수로가 열출력 100Mwt에 열효율 30% 정도로 설계했다고 했고, 해커 박사는 이에 근거해 전력 생산이 25~30MWe 정도일 것이라 추정하였다. 이 원자로는 북한이 자체로 설계, 건설하고 핵연료도 저농축 우라늄을 자체 생산해 장입한다고 한다.

원자로 형태가 다르고 국제사회의 지원이 없는 만큼 북한이 새롭게 획득해야 하는 설비와 기술들이 있다. 북한은 이산화우라늄(UO2) 형태의 핵연료를 개발하고, 피복재도 지르코늄 합금이나 스테인리스 등을 개발해 적용할 것이라 한다. 세부적인 가동 특성들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경수로는 고온, 고압 조건에서 가동되므로, 이에 필요한 설비와 운용경험을 갖추어야 한다. 경수로 건설과 운영 경험이 없는 북한이 이를 성공적으로 완성하고 운영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 ISIS의 울브라이트 박사는 이 경수로 역시 무기급 Pu 생산에 이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이 경수로를 Pu 생산에 최적화하면 연간 20kg 정도의 무기급 Pu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핵무기 3개 정도에 해당한다. 북한은 이를 위한 농축 우라늄 생산을 시작하였고, 재처리공장도 경수로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도록 개조할 수 있다.

3) 대규모 고급인력 양성

그 동안 양성한 전문인력은 7,000여명에 달하고 연구인력은 3,000명에 달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개략적으로 추산하면 다음과 같다. 김일성종합대학이 1950년대부터 10명씩 20년간, 1973년 이후에는 60명씩 40년 양성했다고 보면 총 2,600명이 된다. 김책공대는 80년대에 학과가 축소되었지만 초기에 5개 학과였던 것을 감안해 70명씩 40년을 잡으면 2,800명이다.

여기에 물리대학과 기타대학을 합해 100명씩 30년으로 해서 3,000명을 잡았다. 모두 8,000명을 넘어서지만, 그 동안 은퇴한 인력을 생각해야 한다. 소련 등에 유학했던 고급인력은 250-300명 정도로 보인다. 다만, 핵무기 생산과 관련한 핵심인력은 300명 정도에 그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표 1>은 영변에 있는 물리대학의 학과 구성을 정리한 것이다. 핵재료, 핵전자, 핵에너지의 3개 학부에 모두 10개의 학과 또는 코스를 설치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중 3개는 엘리트 코스이고, 원자로공학과 한 개는 3.5년제 전문대학 학과이다. 나머지는 반년간의 군사훈련을 포함해 4.5년의 학습을 한다.

<표 1> 영변 물리대학의 학과 구성

학 부

학 과

학 부

학 과

핵 재료

핵재료

핵 에너지

원자로(3.5년제)

핵재료(엘리트코스)

원자로

핵화학

핵 전자

핵측정

원자로(엘리트코스)

핵공정

분자 물리

핵공정(엘리트코스)

엘리트코스는 고등중학교(한국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군에 입대하지 않고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수재들로 구성된다. 3개 학부에 모두 엘리트코스를 둔 것은 영변지역 핵 시설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이 대학은 영변지역의 생산과 연구기반을 활용해 실무교육을 하고 마지막 학기는 거의 대부분을 현장실습으로 진행한다. 영변지역에 있는 원자력 시설 전부를 설계, 건설, 운용할 수 있는 인력들을 자체적으로 양성하는 것이다.

4) 원심분리기 생산과 우라늄 농축

북한이 해커박사에게 대규모 우라늄 농축 공장을 보여 주면서 우라늄 농축 능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우라늄 농축기술 개발을 추진해 상당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해 왔다. 2000년대 초반의 국가과학기술발전 5개년계획과 국가과학원 산하 연구소들의 연구 과제에서도 나비에-스톡스 방정식(Navier-Stokes Equation) 등 원심분리기 가동에 필요한 공정수학 연구과제들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2009년 5월 김정일의 희천시 기계공장 현지지도 사진에서 P2형 원심분리기 로터를 공개하였고, 이후 원심분리기 생산에 쓰이는 핵심 설비인 유동성형기(flow forming machine)를 시찰하는 모습을 공개하였다. 2010년 11월에는 북한 영변을 방문한 해커 박사에게 2,000개의 원심분리기를 갖춘 대규모 우라늄 농축 공장을 보여 주었다.

이 공장은 2개 구역, 6개의 캐스케이드(cascade)로 구성되었고 분리 능력은 연간 8,000kgSWU라고 한다. 정상가동하면 1년에 무기급 우라늄 약 40kg을 생산해 2개 정도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외부에 시위하기 위해 이 정도 규모의 공장을 건설한 사례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이 원심분리기 생산기술과 우라늄 농축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원심분리기 생산 경험이 있는 중국의 한 전문가는 북한이 보유한 구형과 신형 유동성형기를 사용해 연간 1,000~1,500대 정도의 P2형 원심분리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북한이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 생산에 성공했을 경우, 핵무기 생산량을 급속도로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규모 농축공장의 정상 가동은 그 이전 단계인 농축기술 연구기지와 소규모 중간시험공장, 대규모 원심분리기 생산공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변 이외의 지역에 복수의 다른 농축공장이 있을 가능성도 크다. 우라늄 농축 공장은 전력 소모가 적고 지하 터널이나 밀폐된 건물에서 생산 할 수 있으므로, 외부에서 찾아내기도 어렵다.

미국 ISIS의 울브라이트 박사는 영변 이외 지역에도 농축공장이 있다고 가정하고, 북한이 2011년 말까지 핵무기 4~11개에 해당하는 90~220kg의 무기급 농축우라늄을 생산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이를 토대로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2013년의 제3차 핵실험에서 우라늄을 사용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북한이 그동안 기울인 노력을 고려하면 그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5) 무기급 핵무기 개발

북한은 5MWe 원자로를 가동하여 무기급 Pu를 생상하고 이를 사용하는 내폭형 핵무기를 개발, 실험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핵무기의 성공적인 개발 여부는 북한이 행한 3차례의 핵실험 결과로부터 얻을 수 있다. 강정민 박사는 CTBTO와 USGS에서 측정한 지진파 강도(Mb)와 지하암반핵실험 관계식을 근거로 그 위력을 <표 2>와 같이 산출하였다.

<표 2> 북한 지하핵실험 지진강도와 폭발위력 추정

CTBTO

지진강도(Mb)

USGD

지진강도(Mb)

CTBTO

근거 위력(kt)

USGS

근거 위력(kt)

1차(2006)

4.0

4.2

0.5

0.8

1차(2009)

4.5

4.7

1.8

2.8

3차(2013)

4.9

5.1

4.5

7.3

그러나 지하핵실험 지진강도와 핵무기 위력 관계식을 모든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하면 많은 오차가 발생한다. 이는 핵폭발로 인한 충격파 강도가 기폭실 주변 암석 종류와 수분 함량, 동공 구축 여부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주변 암석이 단단한 암석일 때 부드러운 암석에서보다 충격파가 크게 나타나고, 수분이 많아 공극율(porosity)이 낮을수록 커진다. 기폭실에 커더란 동공을 구축하면 충격파를 획기적으로 감축시켜 지진파 강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표 2>의 핵무기 위력은 모두 수분이 많은 단단한 암석을 상정하고 산출한 것이다. 한국 지질자원연구원 역시 핵실험장인 북한 풍계리의 지형이 화강암으로 단단하고 수분이 많다고 가정하고 제3차 핵실험의 위력을 6~7kt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는 위력을 너무 작게 산출한 것일 수 있다.

풍계리 지역이 화강암이지만 그것에 상당한 균열과 토양층 혼합이 있을 수 있고, 수분도 충분치 않아 공극율이 어느 정도 높을 수 있다. 따라서 제3차 핵실험 위력을 10~12kt로 높게 잡아도 아무런 무리가 없다. 이는 정상적인 핵폭발에 해당하고, 북한이 무기급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제3차 핵실험이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한 한 것이라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1964년에 실시한 중국의 최초 핵실험과 같이, 내폭형 기폭장치에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면 더 적은 핵물질을 사용하면서 확실한 핵폭발을 일으켜 위력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면, 북한이 핵무기 수량과 폭발 위력을 크게 증가시키면서 그 다음 단계의 고성능 핵무기를 앞당겨 개발할 수 있게 된다.

6) 핵무기 소형화

핵무기 폭발시험에 성공하면, 그 다음 단계로 북한이 보유한 미사일에 탑재할 만큼 소형화한 핵탄두 개발로 이어진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동안 북한이 소형 핵탄두를 개발하는데 몇 년이 더 걸릴 것이라 예측하였다. 그러나 최근 주한미군사령관과 한국 국방부장관이 북한 핵무기 소형화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필자는 북한이 소형화에 성공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근거를 다음의 5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서 후발국의 우세를 충분히 활용했기 때문이다. 최초 핵무기가 개발된 지 수십년이 지났으므로, 북한이 핵무기 선진국들의 개발 경로를 파악할 수 있었고 구 소련과 중국 등에서 공개된 자료들도 입수할 수 있었다. 이후 장기간의 준비를 거쳐 처음부터 소형 핵무기를 개발하려 하였다. 북한이 보유한 스커드 미사일도 구 소련이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핵물질 생산량이 적은 국가가 그 사용량이 적은 소형 핵무기를 만들어 자국이 보유한 탄도미사일에 탑재하려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둘째로, 북한이 2006년의 최초 핵실험 때 중국에 통보한 위력이 4kt였다는 점이다. 후에 핵물질 사용량이 2kg 정도라고 하였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 정도의 고성능 소형 핵무기를 짧은 시간에 만들 수 없을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북한이 처음부터 소형 핵무기를 목표로 하였고 이를 천명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자국이 보유한 스커드와 노동 등의 중, 단거리 미사일 탑재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다.

셋째로, 1999년에 파키스탄의 칸 박사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평양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의 지하 터널에서 직경 24in(61cm)에 뇌관이 64개인 핵탄두 3개를 목격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는 북한이 보유한 미사일에의 탑재가 가능한 크기이다. 북한에서 망명한 황장엽 비서도 북한이 소형 핵무기 개발 성공했다고 말한 바 있다.

넷째로, 자력갱생으로 자체 생산이 가능한 대체소재를 개발한다는 점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탄두의 대기권 재진입시 발생하는 고열과 진동에 견딜 수 있는 세라믹 등의 첨단재료를 생산하지 못할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는 자력갱생에 의존하는 북한의 개발 경로가 첨단기술과 소재가 풍부한 선진국들과 많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중국은 1964년의 최초 핵실험 2년 후에 유리섬유 등의 자체개발 소재로 미사일 탄두를 만들어 폭발실험에 성공했다. 북한 역시 이러한 경로를 채택할 수 있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국가 간의 경계가 희석된 오늘날에는 수없이 많은 대체품과 차선책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평갱도 지하핵실험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원거리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측정해 지진파 강도에 의한 폭발위력과 기체 포집에 의한 핵물질 분석을 수행한다. 그러나 지하 갱도에서 직접 핵실험을 수행하는 북한은 원하는 거리에 초고속 카메라와 다양한 계측 장치들을 설치해 내폭 현상과 중성자, 감마선, X선 발생량 등의 시계열 변화를 상세하게 측정할 수 있다. 이른바 근거리 물리 측정이다.

수평갱도 지하핵실험은 암석을 통해 측정관을 연결하므로 외부 간섭 없이 양호한 측정 결과를 얻을 수 있고, 특정한 핵 환경을 창출해 원하는 실험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며, 실험 후에도 주기적으로 샘플을 회수해 중장기 효과를 분석할 수 있다. 특히 진공이 필요한 X선 열역학 효과는 수평갱도 지하핵실험에서만 성공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결국 3차에 걸친 수평갱도 지하핵실험을 통해 핵무기 소형화에 필요한 내폭 원리와 수치 자료들을 충분히 얻고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핵무기 선진국들이 지상에서 수평갱도 지하핵실험으로 이전한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도 근거리 물리를 활용해 새로운 핵무기 개발이나 위력 증가, 소형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7) 강화형(boosted, 증열형) 핵무기 개발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이 상당한 폭발 위력을 보이면서 강화형 핵무기 실험 가능성이 제시되었고, 한국 국방부에서도 그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필자는 북한 국가과학원의 2000년대 초반 연구개발 동향을 분석하면서, 북한이 가까운 시일 내에 강화형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

제2차 과학기술발전5개년계획(2003~2007) 기간의 북한 국가과학원 연구과제에 “D(중수소) – T(삼중수소) 핵융합”, “Li6를 북한에 풍부히 매장되어 있는 천연 Li에서 분리하는 연구”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2010년부터 3년간 추진된 단기 과학기술발전5개년계획에도 “황화수소-물에 의한 중수 농축” 이라는 연구과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D-T 핵융합을 실현하려면 고가의 첨단 실험 장비와 중수소, 삼중수소 등의 핵융합 물질이 있어야 하는데, 북한의 실정에서 이를 모두 갖추는 것이 극히 어렵다. 특히 삼중수소는 원자로에서 생산해야 하고 반감기가 12년 정도로 짧으며 기체 상태로서 취급이 어렵다.

따라서 북한은 제한된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면서 중국 등의 사례를 참고하여 가능한 방법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 중 하나가 원자탄 폭발시의 고온 고압으로 Li6와 중수소를 반응시켜 삼중수소를 발생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D-T 핵융합을 일으키는 강화형 핵무기의 개발이다.

강화형 핵무기 개발 시험은 핵폭발 없이도 실험실에서 수행할 수 있다. 레이저 핵융합 설비를 이용해 고온 고압 플라즈마를 만들고, 이를 반사 거울로 작은 점에 집중시켜 순간적으로 수천만도의 고온고압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1980년대 중국과학원과 북한과학원의 과학기술협력을 통해 중국이 사용하던 레이저핵융합 설비가 북한에 공여되었다. 북한은 이를 평성에 있는 과학원 산하의 이과대학에 설치하고, 용량을 확장하여 실험 조건을 강화하였다.

결국 2010년 5월에 북한 노동신문에서 과학기술자들이 핵융합에 성공했다고 보도하였다. 당시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은 토카막(Tokamak) 같은 첨단 고가 실험장비가 없는 북한이 핵융합에 성공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핵융합에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에 비해 중국 언론은 상당히 격한 논조로 북한을 비난하였다. 이는 중국이 자신들이 제공한 레이저핵융합 설비를 북한이 이용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북한이 레이저핵융합 설비를 이용해 핵융합 기술을 발전시키면 폭발력이 확장된 강화형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수소폭탄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의 전력난과 원자력 개발의 당위성 홍보

북한은 오래 전부터 평화적인 원자력 이용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관련 설비와 기술을 개발하고 대규모 인력을 양성해 왔다. 최근에 우라늄 농축에 착수하면서 자체적으로 건설하는 경수로에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선전하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 제네바 합의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신포 지역에 경수로를 건설해 주기로 합의했던 것도 이러한 주장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북한은 현재 국가경제 전체가 침체 상태에 빠져 있고 그 선두에 에너지 문제가 있다. 핵 문제를 부각시켜 에너지를 보상받으려 하는 북한의 태도에서 이를 잘 파악할 수 있다. <그림 1>은 북한의 전력망을 나타낸 것이다. 푸른색은 수력발전소이고, 붉은색은 화력발전소이며 녹색은 건설 중인 수력발전소이다.

<그림 1> 북한의 발전소 배치와 송전망

Lee Image 1

대체적으로 볼 때, 산악이 많은 동북지방에는 수력이 많고, 평야지대이면서 산업이 밀집한 서남지역에는 화력발전소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수력발전은 강수량이 적은 겨울에 생산량이 크게 감소한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북한은 동북지역과 서남지역의 경계선을 따라가는 초고압 전송망을 구축하고, 황색으로 표기된 신포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여기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는 전략을 수립하였다.

신포 경수로 건설 중단으로 이 계획이 무산되고 미국의 중유지원 중단으로 화력발전 생산량도 급감하자 북한이 크게 반발한 것도, 국가적인 타격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석유가 나지 않는 북한에서, 국제사회의 지원 없이 국내산 석탄 화력과 수력발전에 의존하는 체제를 장기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 분명히 나타난 것이다.

북한의 에너지문제는 국가적인 재정난으로 인한 에너지자원 공급과 자원 부족, 기술공급 부족 등으로 표현된다. 이에 따라 에너지 공급의 절대적인 부족이 날로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단위용량 대비 에너지 생산 가격은 선진국보다 2~10배 높고, 세계평균보다도 월등히 높다. 이는 북한과 유사한 구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북한은 에너지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자원부족에 의한 생산 및 공급부족이라는 과거의 인식에서 벗어나, 전반적인 국가 에너지체계와 에너지의 흐름, 비용 균형의 견지에서 기술적, 경제적 분석을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보다 합리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북한이 이전의 입장에서 벗어나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에너지 모형들을 도입하고 이에 기초한 에너지 수급 합리화 계획을 세우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위해 북한이 고려하고 있는 것은 1) 최소비용, 2) 에너지 효율, 3) 안정성, 4) 현대화, 5) 비용분담 등이다. 이를 토대로 북한 국가과학원이 수립한 에너지 수급 시나리오를 <표 3>에 정리하였다.

현 상태의 문제점을 회복하는 단계와 이를 넘어선 활성화 단계, 지속발전 단계로 나누어 중장기 해결방안을 수립한 것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문제를 회복하는 데는 10여년이 소요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단계의 특성은 국가에 의한 계획적 소비와 통제, 감독 강화 등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당분간은 북한의 에너지 수급정책이 강력한 국가통제를 받으면서 수행될 것이고, 원자력 발전과 핵무기 개발과의 국가적 연계도 더욱 강화될 것이다.

<표 3> 북한의 에너지 수급 시나리오

구 분

회복 단계

활성화 단계

지속발전 단계

적용 원리

안전성,

국가적 보장

최소비용, 안정성,

비용분담

현대화, 안정성,

효율화

에너지 생산

탄광개발, 현대화,

발전소 원상복구,

원자력 도입

수요에 의한 생산, 분산형 발전체제,

소형 중유발전

대외자원 공동개발,

초임계 석탄화력,

복합 순환발전

에너지 공급

계획 공급,

수입 제한

에너지 상업화,

에너지서비스회사

에너지 무역,

에너지시장 서비스

에너지 소비

계획적 소비,

지시에 의한 절약,

감독, 통제

고객에 의한 소비, 정책, 절약

고객에 의한 소비,

최소 에너지,

성능 표준화

향후 전망 및 시사점

북한은 수십 년의 노력을 거쳐 국내산 원료를 사용하는 원자력 주기를 완성하였고, 상당한 규모의 원자력 산업을 육성하였다. 이를 토대로 핵무기를 개발하였고 그 수량과 성능을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이제 무기급 농축우라늄과 강화형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다면 더 이상 북한의 핵 능력을 무시하거나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핵무기 소형화와 북한이 보유한 미사일에의 탑재 성공여부는 또 하나의 뜨거운 핵심 이슈가 될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이 아직 핵무기를 소형화해 미사일에 탑재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중량과 부피가 크고 발사수단과 정확도, 방어돌파능력이 부족해 전술적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때 드러난 것처럼, 북한의 무기 상당수가 노화되고 있다. 핵무기도 각종 부품과 재료, 기술 부족으로 신뢰성과 재현성, 유지보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합금은 기간이 지날수록 상용성에 변화가 생기고 용접 부위는 쉽게 부식되며, 고성능 폭약도 취약해진다. 중성자 발생장치도 최선의 상태로 상시 준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나타난 여러 가지 징후들은 북한이 자력갱생으로 이러한 난관들을 상당히 극복했고 미사일 탑재 측면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는 분석을 하게 한다. 우리의 방어 능력이 이를 감당할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만큼, 전반적인 북한 핵능력 재평가와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 관련기술 개발과 수준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연구와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제2자연과학원(국방과학원)과 같은 직접적인 무기 개발기관 뿐 아니라 국가과학원과 국가과학기술계획 전반에 대한 정밀 조사도 병행해야 한다. 북한이 전국적인 동원체제를 가지고 있으므로 국가과학원도 국방 관련 연구에 참가하고 있고, 기초연구와 중장기 연구는 상당부분을 국가과학원이나 대학에서 수행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기술적 해석과 사례연구, 정책연구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비핵화 선언에서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설비를 갖추지 않기로 했는데, 남한은 이를 유지한 반면에 북한은 이를 모두 위반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어떤 의미와 범위, 한계를 가져야 하는지, 우리는 어떠한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지를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수많은 과학기술적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언론에 자주 보도되고 있는 통일준비와 북한의 비상사태 대비책 마련에서도 핵기술과 인력, 설비 등을 주요 과제로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통일준비위원회 업무에도 통일 후의 한반도 원자력주기 문제를 포함시킬 수 있다. 핵문제는 그 파급 효과가 다른 어떤 것보다 크므로, 대책 수립에서도 보다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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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source: http://teacup.net.au/tag/infrastructure-inves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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