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한국 원전, 초기부터 안전불감증?, SB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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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원전 발전소 부품 관련 비리가 잇따라 적발되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원전 도입 초기부터 이미 심각한 ‘안전 불감증’에 빠져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외비 보고서가 31년 만에 공개됐습니다. 해당 문건은 미국 안보, 환경, 자원분야 정책연구 민간기관인 노틸러스연구소(Nautilus Institute)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지난 2010년 12월 확보한 것입니다. 문서 제목은 ‘한국의 핵 발전 프로그램의 안전 측면 업데이트 리뷰(Update Review of Safety Aspects of Nuclear Power Program in the Republic of Korea)’인데요. 이 대외비 문건은 미 캘리포니아 소재 S. 레비 주식회사가 세계은행과 유엔개발기구(UNDP)의 요청으로 1982년 4월 작성했습니다.

이 문건을 작성한 S. 레비측은 보고서에서 “약 2주동안 한국 원자력 관계 부처, 연구원을 만나고 발전소 현장도 확인한 뒤 보고서를 냈으나, 더 상세하게 내용을 검토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그런 보고서를 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뭐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 당시 자료를 찾아봤는데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 눈에 띄는 내용이 들어왔습니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원전 도입 초기에 국내에 제대로 된 전문가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고리 원전 1호기 도입 당시 규격검사를 담당한 서울대 정창현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해볼까 합니다. 참고로 정 교수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1호 졸업생이자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직후 고리 원전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초기 국내에 기술진이 없어 원전 건설의 모든 사항을 메이커인 미 웨스팅사에 맡기고 완공 후에도 돈만 대는 이른바 ‘턴 키 베이스’ 계약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72년에 미국 정부의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이 기종에 대해 추가 보완지시를 내리고 미국 내 건설을 보류시켰어요. 원자로 노심 비상 냉각장치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진단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웨스팅사 관계자들은 한국전력과 원자력연구원측에 미국의 규제조항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며 원래의 설계대로 건설해도 안전도에 이상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솔직하게 말해서 당신들의 설계에 따라 제작된 원자로에 대해 무엇이라고 설명해본들 한국의 기술진이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으며 MIT 공과대학에서 공부한 나도 실제 원전 가동에 참여해본 경험은 부족하니 미국 규제기준에 맞춰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정 교수는 위 인터뷰 내용을 1991년에 처음 공개했습니다. 고리 원전이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가동 중단과 잦은 고장으로 문제를 일으킨데다 1991년 당시에도 한해 10건의 고장이 일어났기 때문에 언론이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무튼 정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원전 도입 초기에는 안전 불감증이란 말보다는 오히려 원전 가동과 안전관리 전반에 대해 거의 무지한 상태였다고 보는 게 더 적확해보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31년만에 공개된 노틸러스연구소의 문건을 살펴볼까요? 이 문건을 보면 고리 원전 가동 직후 한국 원전과 안전 관리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82년 작성된 이 보고서는 우리나라에 원전이 고리 1호기 밖에 없던 시절 원자력 안전대책의 실상과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당시 보고서는 “대한민국에서 원전에 대한 제3자에 의한 독립적 품질, 안전 감사는 최저 수준”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몇몇 사례에서 안전과 품질 담당 인력이 일정을 연장하지 말도록 조직적인 압력을 받는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또 다른 몇 사례에서는 필수사항인 자세한 안전성 분석과 품질 보증 문서화가 귀찮은 일이며 필요 없는 일이라는 태도가 있었다”고 적시했습니다. 일정을 맞추기 위해 안전성 점검과 품질 보증을 소홀히 하는 태도나 관행이 당시부터 한국 원자력발전 업계에 있었다는 겁니다. 이 보고서는 1980년에 이뤄진 선행조사에 지적된 사항에 대해 한국측이 고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점도 지적하면서 이례적으로 ‘실망스럽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핵 프로그램에서 안전과 품질의 중요성이 인정되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 안전과 품질이 일정에 우선한다고 지적하고 있는데요. 결국 한국 정부 최고위층이 핵발전의 안전성과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나서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안전성과 품질이 일정을 맞추는 것만큼이나 핵심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한국 정부 최고위층이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이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핵 발전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규제담당 기관과 조직의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권고도 있었습니다. 아울러 통합된 예비부품 관리프로그램이 실행돼야 하며 이를 위해 해외부품을 조달하기 위한 긴급 자금도 함께 배정돼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1980년에서 1982년 사이 핵발전 계획을 대폭 확장했음을 보여주는 점도 흥미로운데요. 우리 정부가 1980년 내놓은 예상에서 핵발전이 국내 전력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6년 24%, 1991년 34%로 전망했으나, 불과 2년 뒤인 1982년에는 예상 비중을 1986년 27%, 1991년 41.5%로 대폭 상향 조정했습니다.

고리원전 1호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로 1978년 4월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2007년 설계수명 30년을 넘겼지만, 이듬해 정부가 10년간 재가동을 승인해 다시 운영되고 있는데요. 지난해 2월에는 고리 1호기에서 12분간 완전 정전(Black out)이 발생하면서 노후 원전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당시 원자핵붕괴 잔열 제거 장치가 가동되지 않아 원자로 냉각수가 36.9도에서 58.3도로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고리원전에 장시간 전원공급이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처럼 원자로 온도가 상승해 노심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 현상까지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원전 도입 초기에는 기술 수준이 매우 낮아 안전 관리에 허점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원전 안전 관리에 허술함이 있다는 건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특히 최근들어 불거진 원전 부품 납품 비리로 국민들의 불안감마저 증폭시키고 있는데요. 당국은 납품비리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은 물론 향후 원전 안전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원전 사고는 당대에 끝나는 게 아니라 수천 년, 수만 년 후까지 여파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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